Title 빨간 괴물

Nick yungcho

Time 2009-08-04 10:1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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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pds7.egloos.com/pds/200802/24/87/c0043687_47c0642a402e8.png 빨간, 아주 빨간 괴물이 나타났다. 인간의 형상을 지녔으되 온몸을 마젠타레드-1 페 인트(자동차 도색에 쓰이는 페인트)에 빠트린 듯 시뻘건 형상이었다. 놈에게 아무 두려움이 없었다. 다만 정체가 궁금했다. 녀석은 눈알을 대롱거리며 눈 앞을 어지럽혔다. 손을 뻗어 녀석의 눈알을 손에 쥐었다. 따듯했다. 놈은 눈물을 흘렸다. 손을 뗐다. 주춤 다가가 녀석의 눈동자에 입맞춤했다. 녀석은 고맙다는 듯 고개를 숙였다. 녀석과 손을 다정하게 맞잡았다. 왜인지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일년이 지난 지금 녀석은 내 기억에서 점점 사라져가고 있었다. 이제는 놈을 떠올릴 수 없다. 생활만을 지탱하기에도 힘이 들었다. 일주일에 서너 건의 아르바이트를 돌았다. 그러나 나만이 그 괴물을 보았다는 특권의식은 계속 가졌다. 남들이 한번도 보지 못한 생물을 목격하였다는 사실은 내가 삶을 지탱하는 하나의 힘이 되었다. 비밀이 있다는 건 얼마나 쾌락적인가. 상투적인 삶에 활력을 불어넣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점점 녀석을 잊어가고 있었다. 일년전 만남 이후 놈은 내 앞에 나타나주지 못했다. 녀석은 무얼 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매일 매일 일에 치이는 나와는 다른 독특한 삶을 살아가고 있겠지. 꼭 그래야만 한다. 그래야만 내 인생이 무의미하지 않겠지. 내 생각이 얼마나 근거 없는 비약인 지는 나도 안다. 여느 때와 같이,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러 가기 위해 걷고 있었다. 헌데, 녀석이 내 눈 앞에 나타났다! 놈은 내게 말을 건네고 있었다. 직접 말을 하진 않았지만, 괴물의 눈동자를 통해 놈의 생각을 엿볼 수 있었다. '잘 지내?' 이런 상투적인 인사 같으니라고! 웃었다. 그리고 답했다. “물론” '아아, 잘됐다.' 그래, 나도 잘됐다고 생각하며 미소 지었다. 놈은 내 웃음을 보며 얼굴을 찡그렸다. 당황해서 빨리 말을 뱉었다. “왜?” '나를 비웃는 거냐?' '그럴리가?' 오해였다. 나란 인간은 남을 쉽게 비웃거나 하는 놈이 아닌데… 뭐 이미 오해 받은 건 할 수 없지. 일년 전 그날처럼 괴물의 눈알을 잡았다. 녀석은 미소지었다. 일년 전 그날을 회상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 때 너는 참으로 따듯한 인간이었어.' 눈알을 힘껏 움켜잡았다. 놈의 눈알이 으깨졌다. 녀석은 '으끼이' 울부짖으며 내 주위를 뛰어다녔다. 고통을 참지 못하겠다는 듯 땅을 굴렀다. 나는 껄껄 웃었다. 활력의 원천을 나는 괴롭히고 있는 것이었다. 뭐야? 아직도 이렇게 비루하게 살고. 그렇지만 즐거웠다. 녀석은 계속 고통스러워했다. 또한 눈물을 흘리며, 무릎을 꿇으며 내게 사죄했다. 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 무엇을 잘못했는지도 모르는 주제에, 놈은 내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나는 괴물의 머리를 지근지근 밟아주었다. 아아, 이렇게 기쁠 수가. 왜 이렇게 즐거운 거지? 믿을 수가 없었다. 나름대로 착한 놈이었다고 스스로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인간 말종이었던 거다! 내게 아무런 위해를 가하지 않은 생물체를 괴롭히고 있었다. 땅바닥에 붙박힌 놈을 내버려두고 집밖을 싸돌아다니며 이짓 저짓을 행했다. 성폭행했다. 부모를 범했다. 빨간 괴물을 사육했다. 빨간 괴물과 관계를 가졌다. 어느 날 녀석이 내게 다가왔다. 나를 으적으적 잡아먹었다. 갈기 갈기 흩어져 놈의 뱃속에서 소화되고 있는 내 대뇌가 문득 생각이란 걸 했다. 행복하다. 이제 막 블로그를 만들었는데, 아직 글을 두개밖에..쩝. http://blog.naver.com/yung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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