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빨간 괴물의 일기
Nick yungcho
Time 2009-08-04 15:4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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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혐오스럽다. 스스로도 혐오스럽다. 당신을 믿었다. 그러나 당신이 내게 남겨준 것은 하나의 으깨진 눈알 뿐. 오랜 기간 방황했다. 결국 당신에게로 돌아오지 않을 수 없었다. 내가 분노했던 건 당신의 웃음 때문이 아니었다. 생활에 쫓기는 당신은 이미 따듯함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울며불며 미친 듯이 허겁지겁 당신을 잡아먹었다. 힘이 솟아났다. 아무도 두렵지 않았다. 이리저리 뛰어다니며 닥치는대로 인간을 먹어치웠다. 그들은 심심하게 살았다. 그래서 그런지 어떤 이는 내가 잡아먹을 때 즐거워하기까지 했다. 색다른 경험이라고 생각했을까? 슬슬 싫증이 났다. 어느덧 배가 터질 듯이 불러왔다. 이건 임신이었다.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던 녀석과의 동침이 한 생명을 태어나게 했던 거다. 잡아먹은 인간은 좋은 영양분이었다. 소굴로 돌아가서 가만히 아이가 태어나기만을 기다렸다. 아이는 배를 찢고 태어났다. 나는 피로 흥건한 배를 닫았다. 분홍색 아이는 눈을 뒤룩뒤룩 거렸다.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나는 '내가 네 어미란다'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녀석 생각이 나서 잠시 가만히 있었다. 아이는 내게 씨익 웃었다. 나도 아이에게 미소지었다. 아이가 내게 다가왔다. 그리고 나풀거리는 내 나머지 눈알을 잡아 으깼다. 그렇게두 눈을 실명했다. 두 손을 휘저으며 말했다. '아가야, 어딨니?'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다만 나를 비웃는 듯한 인간의 목소리가 혼란스럽게 내 귓가를 지배할 따름이었다. 두 눈을 잃었기 때문에 먹이를 구하지 못하는 나는 아이에게 모든 영양분을 나누어준 탓으로 점점 야위어갔다. 이제 아무도 혐오스럽지 않았다. 칠흑의 어둠이 평안을 선사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족을 맛보았다. 고요했다. 평온했다. 그저 이렇게 살아갔으면 했지만, 모든 것은 여의치가 않았다. 나는 굶주렸고, 인간을 먹어야 했다. 그러나 이제 인간을 먹긴 싫었다. 평온한 현재가 깨어질까봐 두려웠다. 어느 날 내 손에 잡히는 보드라운 살결을 감지하였다. 내 자식은 아니었다. 분명 인간의 자식이었다. 왜 내 소굴에 자식을 버리고 갔을까? 피부에 느껴지는 아기는 따듯했다.. 아양 떠는 목소리도 좋았다. 녀석을 키웠다. 모성애가 발동하자 젖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아기에게 무언가 문제가 생긴 듯하면 두려움에 떨었다. 아이는 잘 자라났고, 어느 날 내 곁을 떠났다. 아이를 기다렸다. 천년이고 만년이고, 소굴이 닳아 없어질 때까지 그 자리에 남아 아이를 기다렸다. 아무것도 먹지 않았음에도 배가 고프지 않았다. 어느 날 나는 나를 죽이려고 모여든 인간들에게 잡아먹혔다. 별로 행복하진 않았다. 그저 삶을 살았을 뿐이다.Rep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