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아버지 오래 사세요

Nick Dr.Zhivago

Time 2009-11-29 04: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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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깎이 공부로 힘들게 의사가 된 아버지께선 돈 때문이 아니라, 사람을 살리기 위해 의사가 되셨다. 그리고 나도 그러기를 바라셨으며, 내심 기대를 하고 계셨다. 그러나 아버지는 당시 인턴이였고, 멀리 살아 어릴 때 아버지와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다. 나는 미대를 나온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미술학도의 꿈을 꿨다. 아버지는 적잖이 슬프셨으리라. 공부도 못 하는 아들이 기껏 돈 안되는 환쟁이가 되겠다고 하니. 그렇게 썩 잘 그리는 놈도 아니였다 나는. 물론 지금도 그렇지만. 그래서 아버지는 내가 고등학생 때 연습장에 그린 그림을 보며 핀잔을 주기도 하셨다. 그러나 나는 화가 나기 보다는, 아버지께 마냥 죄송스러워 혼자 새벽에 곱씹어 울기도 하였다. 아버지께 태어나서 한번도 칭찬을 받아본 적은 없다. 그렇다고 아버지가 내게 주는 사랑을 못 느껴보지도 않았다. 나는 부모님의 사랑으로 풍족했는데, 그걸 어떻게 갚을 도리가 없어 한스러울 뿐이다. 오늘도 나는 울었다. 그래서 그림을 그렸다. 그림의 절반은 눈물 때문에 번져 버린다. 너무나 흉하다. 아버지가 더이상 내 그림을 못 보기 전에, 나는 아버지에게 아버지를 위한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아버지가 흡족할 만한 것을 보여드리고 싶다. 그런데 지금은 그럴 수 없다. 그럴 능력이 없다. 또 운다. 이 그림은 그래서 너무나 슬프다. ------------------------------- 책상 밑에서 발견한 그림. 그리고 뒷면에 써진 글 그리고 어느순간부터 잊어버린 내가 닥터 지바고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유.. 이 그림을 보고 있는데, 목에 너무 쓴게 올라와서 화가 납니다. 아직도 나는 아버지에게 보여드릴 수 없으니까. 그래서 구차하게 내가 열심히 하는 거보다 부모님이 오래 사시길 바랍니다. 미래의 나는 부모님께 좀 더 자랑스러운 아들이 되어 있을 거라고 또 꿈만 꾸고 있습니다. 물론 하고 있습니다. 뼈 빠지게 몸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근데 나는 스물 두살밖에 안 됐는데, 아직도 결과물이 안 나온다고 좌절합니다. 아버지,어머니 오래 사세요. 제발요. 이대로는 너무 억울하잖아요. 나는 아직 아무것도 못 보여드렸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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