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인간족 파이크병 + 라니우스 군대 창설설정

Nick 모에시아총독

Time 2010-11-29 10:2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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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이글루스 포스팅을 하나 끌어오려고 합니다. 역시 반말이니 양해를.....그리고 고딕님이 제 게시글을 복사했다고 쪽지가 날아왔는데 그게 뭐죰? -------------------------------------------------------------------------------- http://pds19.egloos.com/pds/201010/24/27/a0029027_4cc379beacd4b.jpg 017에서 라니우스군에 대한 설명을 간단하게 했던 적이 있었는데, 그때는 본편의 스토리에 치중하여 설명을 하느라 정치세력간의 구도 정도와 파이크병의 무장수준 정도에만 치중하여 이야기를 했었다. 그래서 좀 더 보강설명도 하고 겸사겸사 라니우스 군대가 창설되었던 비하인드 스토리도 좀 풀어보려고 한다. 라니우스 가문이 처음 남부로 이주했을 때는 아직 소규모의 상인집단이었기 때문에 군대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물론 그때도 산적때와 마주치거나 노상강도, 비 우호적인 부락의 습격 등 무력을 써야할 경우는 많았으나 무력은 여차하면 집단 사람들을 무장시키는 것으로도 충분했었다. 하지만 집단의 규모가 커지고, 상행위의 범위와 규모가 늘어나면서 이제는 대처해야할 상대가 단순한 강도따위가 아니라 고용되지 못한 용병단(실제 역사에서도 중세의 용병단은 고용주가 없는 경우 강도단으로 돌변하기 일쑤였다. 물론 고용주가 있어도 임금을 체불하면 용병단은 고용주의 영지를 약탈하는 경우가 많았다)이나 지방영주의 군대 등과 맞서야 하면서 라니우스 가문은 점점 전문적인 무력집단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처음에 라니우스 가문은 자체 용병단을 이끄는 용병대장들과 계약하는 방식으로 군대를 마련했다. 그러나 이들 용병대는 전투력은 괜찮았으나 기강이 서 있지 않아 닥치는 대로 전투 후 약탈, 강간 등을 일삼아 라니우스 가문의 평판을 떨어트렸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패를 나누어 한 패가 산적이나 적군으로 분장하여 수송단이나 친 라니우스 마을 등을 약탈한 후 나머지 용병들이 그들을 격퇴하는 '척'을 한 후 보수를 올려받는 사태까지 벌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용병대장들은 매 계약갱신시 마다 보수를 올려줄 것을 요구했고 라니우스 가문이 이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벌어질 사태를 들어 은근히 협박을 하는 경우도 드물지 않았다. 라니우스 가문은 여러 용병대장을 고용하여 이들끼리 견제하게 하고, 용병료를 일시불이 아니라 월급여의 형태로 지급하거나 성과에 따른 추가보수의 지급 등 여러가지 방법으로 이들 용병단을 통제하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이러한 용병단의 횡포에 치를 떨던 라니우스 가문 회의에선 차라리 가까운 백작령에 의탁하여 보호를 받는 편이 났지 않겠냐는 의견도 많았다. 그러나 돈에 탐욕스럽기로는 용병단을 능가하는 것이 영주들인지라 이 제안은 기각되었다. 이때 회의에서 색다른 의견이 나왔는데, 주장자는 가문 직속의 용병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당시 다른 사람들은 용병대에 그렇게 학을 때고도 또 용병을 고용하자는 거냐며 비판했지만 그는 단순한 용병의 고용과는 다르다고 못 박은 후 설명하기를, 용병대를 모집하되 모집은 병사에 한정하며, 병사는 라니우스 가문이 원하는 전술과 체력을 가지도록 훈련시킨다. 그리고 장교와 하사관은 가문에서 훈련시켜 배출하고 그 최고위 지휘관은 가문의 수장이 맡는 형식으로 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상비군을 창설하자는 제안이었던 것이다. 여기에도 반대는 적지 않았지만 날이 갈수록 독립 용병단들의 횡포가 심해지고 있었기 때문에, 가문 회의는 그 계획을 구체화하여 실현해 보기로 결정하였다. 이를 위해 라니우스 가문은 먼저 장교와 하사관을 기를 교관과 시설을 필요로 했는데, 시설은 어떻게 마련한다 쳐도 교관은 난항을 겪었다. 결국 가문 회의는 자신들의 발원지였던 북부에서 교관을 구해오기로 했는데, 이때 북부에 있던 나코라 선제후가 남부에 지지세력을 키우고 강력한 상인가문과 연결고리를 형성할 생각에 여러가지로 도움을 많이 주었고 라니우스 가문도 선제후급 귀족과의 연줄(게다가 거리가 멀어서 그쪽에서 간섭하기도 힘든 최적의 조건이었다!)을 마다할리 없는지라 나코라 가문과 라니우스 가문은 이 시기에 급속도로 가까워졌다. 나코라 가문이 파견해 준 교관들을 받아 라니우스 가문은 대륙 최초로 '사관학교'라 부를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게 된다(강아지 공화국도 사관학교 비슷한 곳이 존재하긴 했지만 강아지 공화국의 사관학교는 주로 공성무기 같은 특수병과나 참전경력이 있는 중급장교를 대상으로 교육시킨 참모를 육성하는 곳이라 엄밀히 말하자면 라니우스 가문이 최초다). 이곳을 수료한 장교와 하사관을 중심으로 라니우스 가문은 용병을 모집하기 시작했으며 종족불문이라는 원칙 하에 많은 종족이 모병이 응하게 된다.   교관들이 북부출신이었던 것으로 볼 때 당연한 이야기지만 원래 교관들이 키우려고 했던 장창병은 북부의 스쿠타토스와 같은 스타일의 장창병이었다. 하지만 기병력이 주변 군사세력에 비해 상당히 뒤쳐지는(나중가면 기병대도 마련하지만 그때도 수가 적어 결전병기로 간주했다) 라니우스 가문 특성상 보병이 기병의 보조로 수동적인 역할만 해서는 문제가 많았다. 즉, 라니우스 가문은 기병을 중시하는 북부는 물론 기사를 중심으로 하는 주변 영주, 용병대와 달리 보병을 핵심으로 하여 보병이 적 보병과 기병을 막고 그들에 대한 공격까지 하는 멀티롤 파이터의 성격을 장창병대에 부여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장창병을 처음 육성할 때에는 별로 뾰족한 수가 없었던 것도 사실. 그런데 이는 인간 대륙에서 온 한 인간족 용병 지원병에 의해서 해결이 된다. 자신의 이름을 그저 '코르도바'라고만 밝혔던 이 남자는 자신의 나라에서 쓰던 장창방진을 도입해 볼 것을 요청했는데, 코르도바는 예전에 자신이 그의 나라에서 장교로 복무했을때 썼던 방진이라고 설명한 방진은 곧 그 진가를 알아본 라니우스군에 의해 적극적으로 수용된다(라고는 하는데 사실 그때 라니우스군은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심정으로 받아들인 것이었다. 실제로 코르도바가 장교였는지 아닌지도 모르는 일이었고 그가 제안한 전법도 실험적인 성격이 강했기 때문). 코르도바가 제안한 전법은 기본적으로 장창병이 중앙에 직사각형의 방진을 구성하고 그 직사각형의 꼭지점에 노궁병 방진이 위치하여 전후좌우에서 화력지원을 해주고, 만약 적 보병이나 적 기병이 노궁병을 노리고 진격하면 노궁병 방진은 즉시 장창병 방진 내로 후퇴하여 장창병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였다. 물론 노궁병의 화력만으로는 적 보병과 기병을 소모시키는 데에 한계가 있기에(예전에도 언급한 바 있지만 장창병은 기본적으로 적 기병의 돌격을 '저지'하고 '받아내는' 존재이고 실제 기병의 소모는 그들이 돌격을 하거나 돌격 후 재정렬시에 총병들이 쏘아대는 총탄에 의한 것이다)장창 방진 내에는 장창병 뿐만 아니라 할버드나 폴암을 든 보병들이 같이 편제되어 방진 내에서 적의 전력을 타격하는 역할을 맡게 된다. 이 전술은 코르도바의 나라말에서 나온 테르시오(Tercio)라고 명명하게 되는데, 정작 '테르시오'는 이 전술을 의미하는 동시에 이 전술을 쓸 수 있는 최소단위인 '연대'를 의미하는 말이었지만 이미 라니우스군은 연대를 남부어로 명명(레기멘트 Regiment)하고 있었으므로 테르시오라는 말은 코르도바가 전파한 전술을 지칭하는 단어로만 쓰이게 된다. 이 전술을 쓰기 위해서 코르도바는 보병들이 방패를 쓰지 않아야 한다고 했는데, 이는 당시 전투의 패러다임이었던 '방패와 방패가 맞닿는' 전투를 부정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라 처음에는 나코라 선제후의 교관들은 물론 라니우스 가문도 난색을 표했었다. 그러나 코르도바는 장창의 특성상 양손으로 쥐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고, 장창진형에 기동력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방패가 없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의외로 차등적으로 하늘을 향해 올린 장창들이 돌입하는 투사체의 각도나 속도를 줄여주어 피해가 적다고 역설했다. 그가 계속 열성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자, 차츰 라니우스 가문군에서는 한번 믿어보자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게 되고, 결국 그의 주장에 따라 연대를 구성하게 된다. 이에 따라 많은 장교와 하사관들이 코르도바에게서 다시 교육을 받았으며 이들이 차후 라니우스 가문군의 핵심으로 부상하게 된다. 이 교육생 중에는 나코라 가문군의 교관들도 몇명 있었는데, 테르시오 전술이 얼마나 효과적이겠냐며 흥미위주로 들었던 사람도 있었지만 정말 진지하게 코르도바의 교육을 받았던 사람도 있었던 듯 하다. 나중에 이 교관들이 북부로 돌아가서 나코라군 보병의 질을 끌어올리는 데에 공을 세웠던 것을 보면 코르도바의 교육은 어지간히도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이렇게 배출된 지휘관들을 기초로 하여 처음 구성된 연대는 특별히 코르도바의 이름을 따서 '코르도바 연대'(근위연대의 전신)로 명명되었으며, 연대원의 구성은 인간족이 반, 강아지족이 4분의 1에 여우족과 야옹이족이 나머지를 이루었다고 한다. 의외로 종족간에 딱히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았는데, 사소한 충돌이야 몇번 있었지만 이들 모두가 연대발족 다음날부터 말도 나오지 않을 정도로 혹독한 훈련-_-;;;;;;; 에 시달리느라 정신이 없어서 충돌이고 뭐고 쉬고 잠자기 바빴다는 것이 진실일 것이다. 훈련은 구령에 따른 제식훈련과 명령에 대한 복종훈련, 행군, 근접 백병전, 체력단련에 심지어는 수영까지 배워야 했으며 특히나 말에 대한 공포를 이겨내기 위해서 실제로 기병들이 보병 앞 몇m까지 돌격하다가 멈추기도 하는 수준으로 훈련생들은 분명히 기병이 자신을 죽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음에도 말발굽 소리와 휘날리는 흙먼지를 뒤로하고 돌격하는 기병대에 엄청난 공포를 느끼기도 했다. 실제로 실신자까지 나오기도할 정도로 강도 높은 훈련이 계속되었다. 물론 이 훈련을 거치면서 탈락자도 나왔지만 그리 많은 수는 아니었으며 시간이 흐를 수록 연대원들은 옆에서 전우가 죽어나가도 전열을 유지할 수 있게 될 정도로 강인하게 단련되었고 고된 훈련의 반동으로 서로 전우로서 끈끈하게 뭉쳤다고 한다. 이들은 첫 실전으로 예전에 라니우스 가문군의 용병대 중 하나이자 이제는 적대적 도시인 에센도르프에 고용된 '적색용의 용병단'을 상대로 전투를 치루게 되었으며 이 전투(리엔강 전투)에서 가문군은 적 용병단을 무참하게 패배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비록 기병이 부족해 적 용병단을 추격하여 전멸시키지는 못하였지만, 전투 후 에센도르프는 바로 강화의사를 내비쳤고 그때 맺은 조약은 라니우스 가문에게 유리하게 채결할 수 있었다. 그 후 몇번의 전투와 승리를 더 거치면서 테르시오전술은 실효성을 인정받았고 라니우스 가문은 세력을 확대함과 동시에 테르시오식으로 편성된 2개 용병연대(각각 '청색연대', '적색연대'라 명명)를 더 구성하게 된다. 그 확장에 위협을 느낀 용병단과 지역 영주들이 연합하여 라니우스 가문에게 달려들기도 했으나 라니우스 가문의 뒤에 버티고 있는 나코라 가문의 영향력으로 지역 영주들은 직접적인 참전을 망설인데다 설상가상으로 용병단들은 지휘권 문제로 이합집산을 반복하는 바람에 코르도바가 이끄는 3개 연대는 높은 기동력을 이용하여 손쉽게 이들을 각개격파하는 쾌거를 올렸다. 물론 정치적으로 대귀족들은 건드리지 않는 라니우스 가문의 신중한 처신도 이 승리의 이유이기도 했지만, 코르도바와 휘하 용병대의 용맹함이 이 승리의 결정적인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그로부터 몇년이 지나지 않아, 라니우스 가문은 마지막 연대인 '황색연대'를 창설하면서 본편까지 이어지는 4개 정예연대를 구성하게 된다. 라니우스 가문은 이 용병연대에 의해 보호받는 상단을 통해 남부에서 무시할 수 없는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고 이는 나중에 한낱 상인가문의 지도자였던 선대 라니우스가 제국 귀족중 서열이 높은 팔츠백으로 뛰어오르는 발판이 되었다. 이들 용병대는 사실상의 상비군 개념이라 다른 용병들에 비해 급료비용이 더 저렴했을 뿐만 아니라(종신고용에 가깝기 때문에) 라니우스 가문은 급료지불을 중시하였기 때문에 용병들의 배신걱정을 할 필요도 없었고 충성도도 높았다. 이들의 성공은 향후 이스타니아 대륙에서 이를 모방한 용병대의 창설을 불러왔으며 그때까지 위세를 떨쳤던 중세적 의미의 독립적이고 자율적인 용병대가 소멸하게 되는 결과를 맞았다. 위의 그림은 코르도바 연대의 후신인 근위연대의 인간족 장창병으로 근위연대는 특히나 인간족이 많은 것으로 유명하다. 라니우스 가문은 애초에 종족성에 집착하지 않았던 편이었기 때문에 정예 4개 연대는 오히려 야옹이족이 더 소수다. 게다가 갈수록 군대가 늘어나자 처음에는 가문 내에서 뽑았던 장교, 하사관층도 나중에 가면 병사들 중에서 용명을 떨친 자들에게 사관학교의 문호를 개방하여 승진의 길을 열어주게 되는데, 이는 우수한 지휘계통을 확보하는 데에도 유효했지만 부수적으로 병사들에게 능력에 따른 승진기회를 보장함으로써 연대와 가문에 대한 충성도를 증진시키는 효과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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