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tle 다큐르포 <언더그라운드> 6~10화......
Nick 천극J군
Time 2014-12-05 14:36:22
Body
#6 [Abandoned Dog]... 승강장 순찰을 돌고 있는데 건너편 승강장에서 여중생 2명이 유기견과 같이 놀고 있었다... 역내에 유기견이 돌아다니면 위생관련해서 승객민원이 들어오므로, 귀찮아지기 전에 바깥으로 내쫓으려 건너편으로 넘어갔다... 여중생들에게 물어보니 그 유기견이 역 밖에서부터 승강장까지 따라 왔다고 한다... 유기견을 잡으려는데 계속 도망가서 한참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벌이다 결국 여중생들이 잡아다 주었다... 한 여중생은 유기견이 불쌍해 보였는지 자신이 먹던 델리만쥬 반 봉지를 유기견에게 먹여 달라며 나에게 건내줬다... 나는 알았다고 대답하고 유기견을 출구 밖으로 데려가서 멀리 쫓아낸 다음... 매표실로 돌아와 역무원과 델리만쥬를 나눠 먹었다... 너무 뜨거운 델리만쥬는 개에게 좋지 않다... #7 [God Finger]... 승강장에 통기타를 연주하면서 큰소리로 찬송가를 부르는 인간이 나타났다... 다른 승객들이 불편해 하니 조용히 해달라고 주의를 줘도 안하무인이다... 계속 조용히 해달라고 재촉하자... "이 청년이 저의 노래실력에 감동했나 봅니다. 모두 이 안목 높은 청년에게 박수를! 짝짝짝"라고 말하고 떠났다... 역 내에서는 홍보활동이나 포교활동이 법으로 금지되어 있고 그런 사람들을 쫓아내는 것이 내 임무 중 하나였다... 하지만 몇가지 조건만 충족된다면 역내에서 포교활동을 해도 된다... 우리역 근처에 있는 대형교회 K교회에서... 교회광고가 실린 지하철 노선도 1만부... 교회이름이 찍힌 대여용 우산 300개... 교회이름이 붙은 화분 수십 개를 우리역에 기부했다... K교회는 정기적으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동원해 역내에서 포교활동을 벌였고 역장은 받아먹은게 많아 묵인해 주었다... #8 [Wise Peoples]... 승강장에서 간질환자가 발작을 일으켰다... 가보니 사람들이 몰려 있었고, 한 남자가 앞으로 엎드려서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혀를 깨물었는지 피가 섞인 침을 흘리며, 눈은 뒤집히고, 이빨을 갈고 있고, 방뇨까지 한 상태였다... 역무실에 연락하고 응급처치를 하려 했다... 하지만 간질환자를 실제로 본 것이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할지 몰라서 허둥지둥했다... 일단 휴지뭉치로 입 주위의 침들을 닦아내고 혀를 더이상 깨물지 않게 하기 위해 입에다 새 휴지뭉치를 물려놨다... 구경하는 사람들은 도와주지도 않으면서 말로만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척척박사님들이었다... 손발을 주물러라, 등을 두드려라, 똑바로 눕혀놔라, 찬물을 끼얹어라... 여러가지 민간요법들이 구경꾼들 입에서 튀어나왔다... 잠시 후에 도착한 역무원은 역시 베테랑답게 능숙하게 지시했다... '괜히 건드렸다가 잘못되면 독박 쓸 수 있기 때문에 아무도 건드리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내가 119에 전화해서 응급처치법을 물어봤다... 119에서 시키는대로 일단 옆으로 뉘어서 기도를 확보하고 10분 정도 가만히 놔두니 깨어났고 무사히 집으로 돌아갔다... #9 [Drag Me]... 내가 근무할 당시에는 스크린도어가 없었다... 승강장 순찰근무를 하느라 안전선을 따라 걸어다닐 때마다 느끼는게 있다... 선로 쪽으로 몸이 계속 쏠리는 느낌... 선로 쪽으로 누군가가 잡아당기는 느낌... 투신자살 사건을 겪은 뒤 그 느낌이 더 심해졌다... 열차가 들어올 때면 바람 때문인지 그 느낌이 더 거세져서 한두 걸음 뒤로 물러나곤 했다... 지금도 스크린도어 너머로 어두컴컴한 선로를 바라보면 몸이 끌려들어 가는 것 같다... #10 [Golden Poo]... 출구 계단 쪽에서 누가 똥을 누고 있다고 신고가 들어왔다... 가보니 노숙자가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계단에서 바닥에 신문지를 깔고 똥을 싸고 있었다... 노숙자에게 여기서 이러면 안된다고 소리를 질렀지만 나를 보고 고개만 한 번 끄덕거렸을뿐 아무런 대꾸도 없이 계속해서 자기 볼일을 봤다... 다 싸고 대충 닦고 일어나 빗물용 배수로에 가서 오줌까지 누는 여유를 보여줬다... 내가 할 수 있었던 일은 그저 옆에서 소리 지르는 것밖에 없었다... 볼일을 마친 노숙자는 똥을 싸놓은 신문뭉치를 둘둘 말아서 자기가 들고 다니던 비닐봉지에 넣고 절뚝거리며 유유히 역 밖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그냥 싸놓고 도망치는 다른 노숙자들에 비하면 매너는 좋은 편이었다...